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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경제용어] 코인인데 가격이 안 움직인다?…’스테이블코인’이 금융권을 흔드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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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 경제용어] 코인인데 가격이 안 움직인다?…’스테이블코인’이 금융권을 흔드는 이유
달러·원화 등에 가치 연동해 변동성 낮춰…결제·송금 영역으로 확장 은행 예금 이탈·통화정책 영향도 변수…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주목
비트코인은 하루에도 가격이 크게 움직인다. 가상자산이 투자 대상으로는 주목받으면서도 일상적인 결제수단으로 자리 잡기 어려웠던 이유 가운데 하나다. 어제 1만원이던 코인이 오늘 9000원이 된다면 물건값을 표시하고 돈을 주고받는 데 쓰기 어렵다.
스테이블코인(stablecoin)은 이 문제에서 출발했다. 이름 그대로 가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설계한 디지털자산이다. 최근에는 가상자산 시장을 넘어 은행과 카드, 지급결제 산업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가격이 오르지 않는 코인을 왜 살까
대표적인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연동한다. 달러 연동형이라면 통상 ‘1코인=1달러’ 수준의 가치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발행사는 현금이나 단기 국채 등 준비자산을 보유하고 이용자가 원할 경우 스테이블코인을 법정화폐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구조를 갖춘다.
비트코인과 목적부터 다르다. 비트코인이 가격 상승을 기대하는 투자자산의 성격이 강하다면 스테이블코인은 돈을 빠르고 편리하게 옮기는 데 무게가 실린다.
해외송금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기존 금융망을 이용한 국가 간 송금은 은행과 중개기관 등을 거쳐야 한다. 국가별 영업시간과 결제망도 다르다. 블록체인 기반 스테이블코인은 이런 중간 단계를 일부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온라인 결제에서도 마찬가지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수단으로 널리 쓰이게 되면 지금까지 은행과 카드사, 결제대행업체가 나눠 맡았던 영역 일부가 블록체인 기반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있다.
금융권이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히 ‘또 하나의 코인’으로 보지 않는 이유다.
은행이 긴장하는 이유는 ‘예금’
은행 입장에서 더 민감한 문제는 따로 있다. 예금이다.
은행은 고객에게 예금을 받아 이를 기업과 가계에 빌려준다. 예금은 은행이 대출을 공급하는 데 필요한 핵심 자금 조달원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사람들이 은행 계좌에 넣어두던 돈 일부를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꾸기 시작한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100만원을 은행 계좌에 두는 대신 같은 가치의 원화 연동 스테이블코인을 보유하면서 물건을 사고 다른 사람에게 송금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용자에게는 돈의 형태가 달라지는 것이지만 은행에는 예금이 빠져나가는 일이다.
규모가 커지면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과 대출 여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가상자산 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안정과 통화정책의 문제로 이어지는 지점이다.
반대로 은행이 직접 발행이나 유통에 참여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존 예금 기반을 활용하면서 새로운 디지털 결제시장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회사들이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배경이기도 하다.
미국은 제도권으로…달러 영향력 넓히는 스테이블코인
세계 금융시장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미국은 지난해 ‘GENIUS Act’를 제정해 지급용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규제의 큰 틀을 마련했다. 이후 발행과 판매, 자금세탁 방지, 고객확인 등 구체적인 시행 규칙을 마련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
눈여겨볼 부분은 달러다.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세계적으로 확산될 경우 디지털 거래에서도 달러 사용 범위가 넓어질 수 있다. 발행사가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뒷받침하기 위해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을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는 구조도 기존 금융시장과 스테이블코인의 연결을 강화한다.
스테이블코인이 단순한 가상자산 정책을 넘어 통화 주권과 금융산업 경쟁력 문제로 번지는 이유다.
한국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이어지는 것도 이런 세계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1코인=1원’ 원화 스테이블코인 나올까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원리도 달러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원화 가치에 연동해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설계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1코인의 가치를 1원 수준에 맞추는 형태를 생각할 수 있다.
다만 국내 제도의 구체적인 모습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가상자산 2단계법인 가칭 ‘디지털자산법’ 정부안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누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할지, 발행사에 어떤 요건을 적용할지 등은 금융산업의 향후 경쟁 구도를 가를 핵심 쟁점이다.
은행 중심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금융안정과 이용자 보호를 강조한다. 반면 핀테크와 정보기술 기업 등 비은행 사업자의 참여 폭을 넓혀야 한다는 쪽에서는 경쟁과 혁신을 내세운다.
결국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쟁은 ‘코인을 하나 더 허용할 것인가’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의 돈을 누가 만들고, 누가 유통하며, 어느 산업이 결제와 송금의 길목을 차지할 것인지가 걸려 있다.
이름은 ‘스테이블’이지만 항상 안전한 것은 아니다
주의할 점도 있다.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이름이 가치의 완전한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핵심은 발행사가 약속한 준비자산을 제대로 갖고 있는지, 이용자가 원할 때 실제 돈으로 돌려받을 수 있는지다.
시장이 발행사의 지급 능력을 의심하면 1달러를 유지해야 하는 스테이블코인이 1달러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이처럼 기준 자산과의 연동이 깨지는 현상을 ‘디페깅(de-pegging)‘이라고 부른다.
은행 예금과 동일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예금은 기존 은행 규제와 예금자 보호 체계 안에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은 발행 구조와 적용되는 보호 장치가 다를 수 있다. 준비자산 관리와 상환권, 발행사 건전성 등을 제도화 과정에서 따지는 이유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이 크게 오르는 코인을 만들려는 시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오히려 가격이 움직이지 않는 ‘디지털 돈’을 만들려는 시도에 가깝다.
역설적으로 금융권이 긴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격이 급등락하는 가상자산이라면 투자시장의 문제에 머물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이 안정된 코인이 물건값을 내고 월급을 받고 해외로 돈을 보내는 데 사용되기 시작하면 기존 은행 계좌와 카드, 송금망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스테이블코인이 금융권을 흔드는 이유는 가격이 움직이지 않아서가 아니다. 돈이 움직이는 방식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폴리뉴스 정보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