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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 전쟁 막 올랐다…4대 금융, 스테이블코인 각자 다른 승부수 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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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앞두고 KB·신한·하나·우리금융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은행권이 처음에는 상표권 출원과 기술 검증에 집중했다면 최근에는 실제 결제·정산과 해외송금, 가상자산 수탁까지 경쟁 영역이 넓어졌다. 눈에 띄는 점은 네 금융그룹이 같은 시장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길을 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KB금융은 자체 기술과 통합 금융 인프라, 신한금융은 글로벌 결제망, 하나금융은 가상자산 사업자와의 생태계 구축, 우리금융은 실제 상거래와 기업금융을 각각 앞세우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금융그룹은 가상자산 2단계 입법에 대비해 원화 스테이블코인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구체적인 발행 주체와 규율 체계를 확정하지 않은 만큼 당장 발행 사업에 뛰어들기보다는 제도화 이후 바로 사업화할 수 있도록 기술과 제휴망을 확보하는 단계다.
은행들이 스테이블코인을 단순한 가상자산으로 보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은행 계좌를 중심으로 이뤄지던 결제와 송금, 정산이 블록체인 위로 이동하면 은행의 핵심 사업인 지급결제 인프라 자체가 바뀔 수 있어서다. 특히 해외송금과 무역결제는 여러 금융기관을 거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어 초기 상용화 가능성이 높은 분야로 꼽힌다.
두나무 손 잡은 하나금융…커스터디까지 직접 노린다
하나금융은 가상자산 생태계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전략을 택했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와 손잡은 것이 대표적이다. 두 회사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유통뿐 아니라 해외송금과 법인 가상자산 거래, 금융·가상자산을 아우르는 서비스까지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해부터 모바일뱅킹 앱 하나원큐에서 업비트가 제공하는 가상자산 시세와 시장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를 운영하며 고객 접점도 만들어왔다.
커스터디(수탁) 사업도 다른 금융그룹보다 한발 깊숙이 들어가 있다. 하나금융은 글로벌 디지털자산 수탁업체 비트고와 2023년 협력을 시작한 뒤 비트고코리아 설립과 지분 투자에 참여했다. 비트고코리아가 최근 금융정보분석원(FIU)의 가상자산사업자(VASP) 신고 수리를 마치면서 기관과 법인을 대상으로 국내 커스터디 사업을 벌일 수 있는 기반도 갖췄다.
발행에서 거래, 보관까지 디지털자산의 밸류체인을 한꺼번에 확보하려는 전략인 셈이다. 하나금융의 강점인 외환과 글로벌 영업망을 해외송금에 결합할 경우 활용처도 넓어진다. 업비트라는 대규모 가상자산 고객 기반과 비트고의 기관 수탁 인프라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다는 점도 다른 금융그룹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내재화 공 들인 KB금융, 비자 손 잡은 신한금융…우리금융은 쿠팡과 동맹
KB금융은 ‘은행이 직접 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CBDC 실증사업을 통해 쌓은 경험을 토대로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발행부터 결제, 가맹점 정산, 해외송금까지 전 과정을 하나로 연결하는 기술검증을 이미 마쳤다.
KG이니시스와 카이아, 오픈에셋이 참여한 실증에서는 소비자가 별도 가상자산 지갑을 설치하지 않고 할리스 매장에서 QR코드로 결제하면 뒤에서 스마트컨트랙트가 정산을 처리하도록 했다. 해외송금 실증에서는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달러 스테이블코인으로 바꿔 베트남 현지 수취인에게 전달하는 과정까지 구현했다. 송금에는 3분 이내가 걸렸고 기존 방식과 비교해 수수료를 약 87% 줄일 수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글로벌 사업자와의 연결도 준비하고 있다. KB금융은 세계 최대 달러 스테이블코인 가운데 하나인 USDC를 발행하는 서클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국제결제, 국내 USDC 활용 등을 논의해왔다. 서클의 발행·관리 플랫폼인 ‘서클 민트’를 활용한 기술검증도 진행했다.
KB금융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기존 은행 서비스를 그대로 이용하면서 내부의 돈 이동만 블록체인으로 바꾸는 데 가깝다. 소비자가 굳이 블록체인이나 가상자산 지갑을 의식하지 않아도 결제와 송금이 이뤄지는 구조다.
신한금융은 결제에 가장 강하게 베팅하고 있다. 특히 글로벌 카드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신한금융은 최근 비자와 전략적 업무협약을 맺고 비자의 스테이블코인 인프라를 활용해 발행과 송금, 상환을 검증하고 한국 시장에 맞는 사업모델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다.
신한카드는 이미 지난 4월 스테이블코인과 블록체인을 이용한 여섯 가지 결제 기술에 대한 PoC를 마쳤다. 외부 가상자산 지갑과 카드 결제를 연결하고 스테이블코인으로 정산하는 방식부터 기존 카드와 블록체인 결제를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구조까지 시험했다. 이 과정에 비자·마스터카드뿐 아니라 솔라나와 기관용 디지털자산 인프라 업체 파이어블록스 등이 참여했다.
국경을 넘는 결제도 실험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국내 은행과 유럽 금융회사가 원화·유로 스테이블코인을 주고받는 ‘프로젝트 판게아’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 금융회사가 참여했던 ‘팍스 프로젝트’의 후속 성격으로, 기존 국제송금망을 스테이블코인으로 대체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신한이 비자를 끌어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이 제도화되더라도 기존 카드와 은행 계좌가 단번에 사라지기보다는 일정 기간 함께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신한은 이 과정에서 카드·은행과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결제 인프라를 선점하려는 전략이다.
우리금융은 가장 현실적인 사용처를 파고들고 있다. 쿠팡과 진행한 실증이 대표적이다. 우리은행과 쿠팡은 지난달 실제 상용 서비스와 동일한 환경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이용한 결제와 실시간 정산 기술검증을 마쳤다.
쿠팡이츠에서 고객이 주문하면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가맹점주에게 돈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구조를 구현했다. 우리은행은 전자지갑과 은행 계좌를 연결해 원화와 스테이블코인을 바꿔주는 온·오프램프를 담당했다. 실증에는 쿠팡이 투자한 스테이블코인 특화 블록체인 ‘템포’가 활용됐다.
이 모델이 주목받는 것은 스테이블코인의 장점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나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현재 카드나 플랫폼 결제는 소비자가 결제한 뒤 실제 판매자가 돈을 받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블록체인 기반 실시간 정산이 가능해지면 판매자의 현금 흐름을 개선할 여지가 생긴다.
우리은행 역시 신한은행과 함께 프로젝트 판게아에 참여하고 있으며 글로벌 결제·스테이블코인 기업 문페이와도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 기업 고객과 해외 네트워크가 많은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소비자용 코인 결제보다 기업 간 결제와 무역금융, 해외송금 쪽이 상대적으로 빠른 사업화 영역이 될 수 있다.
선명해진 금융권 경쟁 구도…관건은 실사용률
금융그룹의 전략은 결국 ‘누가 코인을 발행하느냐’보다 ‘발행된 코인이 어디에서 움직이게 할 것이냐’로 이동하고 있다. 발행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어렵고 결제와 송금, 환전, 수탁, 자산관리까지 연결해야 금융회사가 가져갈 몫이 생기기 때문이다.
경쟁 구도도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다. 하나금융은 두나무·비트고를 연결해 거래와 수탁을 포함한 디지털자산 생태계, KB금융은 자체 기술을 중심으로 은행 안의 통합 인프라, 신한금융은 비자와 신한카드를 활용한 글로벌 지급결제망, 우리금융은 쿠팡 등 대형 플랫폼 및 기업 고객을 겨냥한 실물 결제·정산에 상대적으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아직 승자를 가리기는 이르다. 가장 중요한 발행 주체와 준비자산 운용, 이자 지급 여부 등 핵심 규칙이 법으로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달 ‘프로젝트 한강’ 2단계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하는 등 디지털화폐 실증은 계속되고 있지만 스테이블코인의 최종 제도는 별개의 입법 과정을 거쳐야 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자체보다 고객이 실제로 사용하는 결제와 송금, 정산 구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확보하느냐가 중요하다”며 “법제화가 이뤄지면 지금까지 진행한 기술검증과 제휴가 실제 서비스 경쟁으로 빠르게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수호 기자 lsh5998688@tech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