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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화폐로의 전환, 스테이블 코인 혁명
Preserved body
은행·핀테크·카드사 결제 주도권 다툼 가열
매일일보 = 기영미 기자 | 가상자산 시장의 거래 수단으로만 여겨지던 스테이블코인이 제도권 금융의 한가운데로 들어올 채비를 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나 원화 같은 법정화폐에 가치를 1대1로 고정한 디지털 자산으로, 가격이 크게 출렁이는 비트코인과 달리 안정적이어서 결제와 송금 수단으로 쓰임새를 넓혀 왔다. 발행사는 발행액만큼 현금·국채 같은 안전자산을 준비금으로 쌓고 이용자가 요청하면 액면 그대로 되돌려준다.
글로벌 시장 규모는 약 3000억달러(약 455조원)에 이르지만 테더(USDT)·USDC 등 달러 기반 코인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각국의 제도화도 빨라졌다. 미국은 지난해 첫 연방법인 ‘지니어스법(GENIUS Act)‘을 제정해 1대1 준비금과 정기 공시를 의무화하고 보유자 이자 지급은 금지했으며 18개월 유예를 거쳐 2027년 1월 본격 시행된다. 유럽연합(EU)은 ‘미카(MiCA)‘로 한발 앞서 규율 체계를 갖추고 달러 등 외화 스테이블코인의 역내 결제는 제한했다. 홍콩은 발행자 인가제를 도입했고 일본은 핀테크 JPYC에 이어 미쓰비시UFJ·미즈호·SMBC 등 3대 메가뱅크가 엔화 코인 공동 발행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근거를 담은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추진 중이나 발행 주체를 둘러싼 이견으로 입법이 늦어지고 있다. 은행이 발행 주체 지분의 과반을 쥐도록 하는 방안을 두고 한국은행과 금융당국, 핀테크 업계의 셈법이 엇갈리는 탓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1월 조사연구 ‘디지털 시대의 화폐, 혁신과 신뢰의 조화’에서 혁신과 신뢰의 균형을 강조하며 발행 주체·준비자산·이용자 보호를 핵심 과제로 제시했고 발행 초기에는 규제 안정성이 높은 은행을 중심으로 시작해 점차 확대하자는 입장이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실험인 ‘프로젝트 한강’도 은행권과 함께 이어가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일상 결제에 자리 잡으면 지급결제 지형도 흔들린다. 지금은 소비자와 가맹점 사이에 카드사·밴(VAN)사·정산은행 등 여러 중개 기관이 끼어 며칠에 걸쳐 정산이 이뤄지지만 스테이블코인 결제는 블록체인 위에서 당사자 간에 곧바로 자금이 오가 정산 시간을 실시간에 가깝게 줄인다. 주말·공휴일을 가리지 않고 24시간 정산이 가능해 특히 며칠씩 걸리고 수수료가 비싼 해외 송금·결제에서 비용 절감 효과가 클 전망이다. 은행권은 예금·결제망과 준비자산 관리 역량을 앞세워 가장 유력한 발행 후보로 꼽히고 핀테크는 스테이블코인 지갑과 간편결제 결합을, 가상자산 거래소는 결제·송금 진출을 노린다.
카드업계는 기존 인프라를 무기로 삼는다. 신한·KB국민·하나·우리·비씨카드 등이 비자·마스터카드·솔라나 등 국내외 사업자와 손잡고 결제·정산·지갑 전 영역에서 기술 검증에 나섰다. 약 200만 곳에 이르는 가맹점망과 정산 네트워크를 활용하면 결제 도입 시 빠른 확산이 가능하고 여신 기능이 없는 스테이블코인에 카드사가 중개자로 참여하면 소액 신용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결제도 구현할 수 있다. 환불·결제 취소 같은 사후 처리에서 카드사가 리스크를 흡수해 안정적 거래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이동철 여신금융협회장은 취임사에서 “카드사의 스테이블코인 활용을 제도적으로 지원해 지급결제 인프라 혁신을 선도하겠다”고 밝혔다.
인공지능이 이끄는 변혁의 시대에 디지털 화폐의 제도권 유입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현실화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선 발행 주체·준비금 규제를 둘러싼 입법이 매듭지어지고 소비자가 안심할 상환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