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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미뷰] 사라진 산업 성장… 디지털자산 기본법의 ‘불편한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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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 ‘블미뷰’는 현장을 발로 뛰는 기자와 에디터들이 관찰자이자 일원으로서 느끼는 솔직한 시선을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기사에 다 담아내기 어려웠던 산업 내 이면의 이슈와 날것의 고민들까지 가감 없이 공유하고자 합니다. 블록미디어의 기록들이 독자와 업계, 그리고 정책 당국에 혁신을 위한 영감과 변화를 향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주> |

[블록미디어 오수환 기자] 6·3 지방선거가 마무리됐다. 디지털자산 기본법 논의가 재개될 차례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는 스테이블코인의 제도권 편입 필요성을 강조하며 입법 추진 의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속도보다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 있다. 무엇을 담을 것인가.

지금 논의의 방향이 그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시선은 산업 성장보다 위험 통제에 더 무게가 실린 모습이다. 제도권 편입의 마중물이 되길 기대했던 업계는, 자칫 촘촘한 규제 그물망에 갇혀 산업 경쟁력을 잃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미 국내에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을 통해 가상자산사업자 신고제와 트래블룰, 자금세탁방지(AML) 의무가 촘촘히 도입돼 있다. 2024년 시행된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법’ 역시 예치금 분리보관, 불공정거래 금지, 이상거래 감시 의무 등을 규정하며 투자자 보호와 시장 감시 체계를 상당 부분 구축해 놓았다.

그럼에도 현재 기본법 논의는 산업 활성화보다 추가적인 안전장치와 진입 규제 강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금융당국이 검토 중인 방안들이 대표적이다. 당국은 은행이 지분 50%+1주를 보유한 컨소시엄에 한해서만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15~20% 수준으로 제한하는 것도 논의 대상이다. 사실상 공공 인프라에 준해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해킹 사고 발생 시 무과실 손해배상 책임을 지우고, 매출액의 최대 10%에 달하는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하며, 일반 금융회사 수준의 전산·정보보안 규제를 적용하는 방안까지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있다. 규제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균형이다. 이러한 과도한 규제는 핀테크 기업과 블록체인 스타트업, 전자금융업자 등 다양한 혁신 사업자들의 시장 참여를 원천 봉쇄할 수 있다.

거래소 지배구조논의도 마찬가지다. 미래에셋은 지난 2월 코빗 지분 92% 인수하며 경영권 확보에 나섰다. 하나은행과 한화투자증권, 삼성증권 등도 잇따라 거래소 투자에 뛰어들고 있다. 이렇듯 전통 금융권과 시장은 이미 디지털자산을 미래 금융 인프라로 판단하고 선제적 투자에 나서고 있는 반면, 제도권의 논의는 산업 경쟁력 강화보다 소유 구조와 지분 규제라는 지엽적인 프레임에만 갇혀 있는 셈이다.

제도가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정작 산업 성장을 위해 필요한 핵심 의제들이 논의의 중심에서 철저히 소외돼 있다는 점이다. 업계가 요구해온 것은 단순한 규제 완화가 아니다. 업종 세분화와 신규 사업자 진입 허용, 법인의 디지털자산 투자 허용, 실명계좌 구조 개선, 탈중앙화금융(DeFi·디파이)와 웹3 서비스의 법적 지위 정립, 커스터디(수탁)와 토큰화 사업의 제도화 등 산업 발전을 위한 ‘진짜’ 제도적 기반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본질적인 과제들은 여전히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이른바 ‘그림자 규제’도 여전하다. 법인의 투자 제한, 1거래소-1은행 구조, 파생상품 취급 제한 등은 명확한 법적 근거도 없이 행정지도와 감독 관행에 의존해 왔다. 기업 입장에서는 무엇이 허용되고 금지되는지조차 예측하기 어렵다. 기본법이 해야 할 진짜 역할은 바로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제도권 논의는 기존의 기형적인 감독 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묶어두는 데만 집중돼 있다.

정부가 규제 프레임에 갇혀 공전하는 동안, 글로벌 시장은 저만치 앞서 나가고 있다.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규제 틀을 다룬 ‘지니어스 법안’이 상·하원 문턱을 넘어 공식 법률로 발효됐다. 유럽연합(EU)은 일찌감치 세계최초 디지털자산 단일 법안인 미카(MiCA)를 통해 전면 시행에 들어갔고, 홍콩 역시 첫 스테이블코인 발행 라이선스 발급을 예고하며 수십 개의 신청서를 심사 중이다. 반면 국내는 아직 법안 초안조차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법제화는 글로벌 격차를 좁히고 산업의 토대를 닦는 ‘제대로 된 입법’이다. 법을 만드는 것 자체는 최종 목적지가 될 수 없다. 규제는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무엇을 금지할 것인가보다 무엇을 허용할 것인가를, 누구를 규제할 것인가보다 어떤 혁신 사업자를 시장에 끌어들일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산업 성장의 비전이 사라진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결국 혁신을 뒷받침하기보다 규제를 강화하는 법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이 균형을 잃는다면, 우리가 마주할 디지털자산 기본법은 숨통을 조이는 올가미로 전락하게 된다. 산업을 육성하겠다며 만든 제도가 도리어 혁신의 영역을 제한하고 미래 금융의 성장 한계를 규정하는 모순을 범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