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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정부 1년] 민간 뛰고 정부 제자리···디지털자산 공약 표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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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오세정 기자] 이재명 정부가 출범 1주년(6월 4일)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핵심 공약 중 하나인 ‘디지털자산 허브’ 구상이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당시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등을 약속하며 “대한민국을 디지털자산 허브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출범 1년이 지난 현재 현물 ETF와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여전히 국회와 정부 논의 단계에 머물러 있다.

반면 시장은 법제화 이전부터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대를 전제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은행들은 거래소 지분 확보와 기술 검증에 나섰고, 증권사와 카드사, 빅테크 기업들까지 디지털자산 생태계 선점을 위한 연합 전선 구축에 뛰어들었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의 대표 디지털자산 공약 가운데 실제 제도화가 완료된 사안은 아직 없다. 올해 1월 국정과제로 채택한 비트코인 현물 ETF 도입은 자본시장법상 가상자산이 기초자산으로 인정되지 않아 발행이 불가능한 상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 역시 발행 주체와 감독 체계를 둘러싼 금융당국과 한국은행 간 이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디지털자산기본법도 지방선거와 정치 일정 등 영향으로 입법이 늦어지고 있다. 다만 최근 더불어민주당 디지털자산 태스크포스(TF)가 후반기 국회 우선 입법 과제로 디지털자산기본법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하반기 입법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산업 육성 제도는 미비한 가운데 규제는 강화되는 추세다. 금융위원회가 추진 중인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령 개정안은 1000만원 이상 해외 이전 거래를 금융정보분석원(FIU) 보고 대상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았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국내 시장의 고립(갈라파고스화)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제도화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내년부터 가상자산 소득 과세가 먼저 시행되는 것에 대한 반발도 나온다.

법제화가 표류하는 상황에서도 민간 기업들은 향후 스테이블코인과 STO, 실물연계자산(RWA)이 유통될 ‘디지털 금융 프론트엔드(고객 접점)‘를 선점하기 위한 거래소 확보 경쟁이 먼저 시작됐다.

전통 금융권과 대기업 IT 계열사들은 국내 1위 거래소 업비트의 운영사 ‘두나무’를 중심으로 거대한 진영을 구축했다. 가장 주목 받는 사례는 하나은행의 두나무 투자다. 하나은행은 최근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 지분 6.55%를 약 1조원에 인수하며 4대 주주에 올랐다. 블록체인 기반 해외송금 및 원화 스테이블코인 유통망 확보를 위한 선제적 포석이다. 은행권이 대형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을 직접 확보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업계 주목을 받았다.

이후 삼성증권·삼성SDS·삼성카드가 6128억원에 두나무 지분 4%를 확보했다. 삼성증권은 STO 유통, 삼성카드는 통합앱 모니모 기반 결제 생태계, 삼성SDS는 차세대 디지털 금융 인프라 구축(B2B)을 목표로 삼았다. 한화투자증권도 보유 지분을 9.84%까지 늘리며 부동산·채권 등을 토큰화하는 ‘실물자산 토큰화(RWA) 제1 허브’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미래에셋그룹은 비금융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코빗 인수를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투자증권과 OKX벤처스는 코인원 투자에 참여해 공동 3대 주주에 올랐다.

은행권도 하나금융 지분 투자 이후 최근 디지털자산 간담회를 열고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이 주최한 간담회에는 신한·IBK기업은행과 iM뱅크·BNK금융 등 지방은행, 인터넷전문은행 토스 등 디지털자산 실무진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도권 안에서 리스크를 최소화하며 사업을 영위하는 방법과 은행권 전반이 협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 방안에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 KB금융은 최근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정산·송금 기술 검증을 완료했고 신한은행은 일본 금융기관들과 함께 스테이블코인 기반 해외송금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우리금융도 글로벌 디지털자산 인프라 기업들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은행들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배경에는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은행 사업 모델을 흔들 수 있다는 위기감도 자리한다. 스테이블코인이 보편화되면 일부 예금이 스테이블코인 준비자산으로 이동하고 결제 기능도 블록체인 기반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있다. 결국 은행 입장에서는 새로운 시장을 방어하면서 동시에 주도권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뿐 아니라 예금토큰을 활용한 차세대 결제망 구축에도 뛰어들고 있다. 기관용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와 시중은행의 예금토큰을 결합한 한국은행 주도의 ‘프로젝트 한강’, 국제결제은행(BIS)의 ‘프로젝트 아고라’도 디지털 금융 혁신의 한 축이다.

프로젝트 한강은 한국은행 인프라 아래 은행이 직접 예금 토큰을 발행하고 이용자는 자기 명의 예금을 예금 토큰으로 바꿔 은행 앱에서 QR 방식으로 결제하는 구조를 구축하는 사업이다. 이를 통해 은행권은 카카오페이·네이버페이 등 빅테크 플랫폼에 빼앗긴 국내 간편결제 주도권을 일부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국가 간 송금·정산 등 글로벌 결제망을 구축하는 프로젝트 아고라의 경우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6개 은행은 프로토타입 시스템 구축을 완료하고 실거래 테스트(RVT) 단계에 돌입했다. 토큰화한 상업은행 예금과 기관용 중앙은행 화폐를 공통 지급결제 플랫폼에 올려 국가 간 지급결제를 단순화하는 구조다.

신한은행은 국내 민간부문 리드 기관으로 중앙은행과 규제 환경에 맞춘 토큰 결제 기준을 설계했다. 우리은행과 NH농협은행은 다중통화 실시간 동시결제 기술을 공식 검증하며 예금 토큰의 기술적 실체를 입증했다.

민간의 투자 확대와 별개로 시장의 구조적 한계와 과제는 여전하다는 게 금융권 시각이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으로 제한할지, 비은행 사업자에게도 허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자금세탁방지(AML), 준비자산 관리, 이용자 보호, 디페깅(가치 이탈) 대응 체계 등도 마련해야 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거래소 기업결합 심사 결과와 국회의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시점도 주요 변수다.

시장 구조 역시 아직 초기 단계다. 은행과 거래소, 플랫폼 기업들이 앞다퉈 동맹을 구축하고 있지만 실제 수익 모델이나 이용자 확보 전략은 검증되지 않았다. 또 핵심 블록체인 기술 인프라 상당 부분은 해외 솔루션에 의존하고 있어 시장이 커질수록 막대한 기술 이용료가 해외로 유출될 우려도 크다.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기존 금융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한 연구도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정호 타이거리서치 연구원은 “지금의 파트너십 경쟁은 단순한 시장 선점을 넘어 규제 설계전에 가깝다”며 “제도 정비 전에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조를 먼저 만들고, 그 구조가 향후 규제 기준으로 이어지도록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라고 진단했다.

노재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디지털경제연구원은 “미국은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에 편입하고, 일본은 디지털자산 규제를 완화하며 산업 육성에 나서는 등 주요국은 제도와 기술을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글로벌 금융 질서가 빠르게 디지털화되는 흐름 속에서 한국은 관련 법적 정의와 규제 체계가 미비한 상황으로, 제도적 기반의 부재는 곧 경쟁력의 공백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흐름과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전략적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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