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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가상자산 합종연횡…산업 융합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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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부터 나타난 금융당국의 정책기조 변화로 금융사와 가상자산(디지털자산) 기업 간 합종연횡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주요 금융사들이 디지털자산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하면서 산업 융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시장 관심도도 함께 높아지고 있는 만큼, 신속한 입법의 필요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지난 21일 기자간담회에서 ‘금가분리(금융과 가상자산 분리)‘에 관한 질문에 “2017년 긴급조치 이후 상황이 변했으니 종합적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금가분리란 2017년 정부의 ‘가상통화 긴급회의’ 이후 은행 등 금융사가 디지털자산 관련 기업의 지분을 매입하거나 직접 디지털자산을 보유하는 걸 금지한 조처다. 법에 명시된 것은 아니라서 행정지도나 그림자규제로 불렸다. 이번 이억원 위원장의 발언을 두고 시장에선 “사실상 금가분리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쏟아졌다.
미국의 제도화 움직임 주시
사실 금융당국의 이런 정책 기조 변화는 이미 지난해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제도권 내에서 단련된 전통금융이 디지털자산시장에 일정 부분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라며 금가분리 완화를 시사한 바 있다.
이런 변화가 나온 배경엔 미국 중심의 디지털자산 제도화 움직임이 있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후 “미국을 디지털자산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선언 아래 본격적 제도화에 나섰다. 스테이블코인을 규율하는 지니어스법이 지난해 7월 대통령 서명을 마쳤고, 시장 전반을 규율하는 기본법인 클래리티법안도 입법이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때 스테이블코인을 화두로 던지면서 관심도가 급증했고, 입법과 함께 정책 변화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금융사들도 이런 기조 변화를 포착해 발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시장에선 한화투자증권이 지난 4월 금융 특화 블록체인 캔톤네트워크 운영사 디지털애셋홀딩스와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미래에셋증권도 홍콩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디지털자산 거래 라이선스를 승인받는 등 디지털자산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국내에선 적극적인 지분 매입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미래에셋증권 계열사인 미래에셋컨설팅은 지난 2월 디지털자산거래소 코빗 지분 92%를 약 1300억원에 취득하는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 임원 변경 신고를 수리받고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심사 중이다.
‘하나·한화·삼성 + 두나무’
5월 들어서는 금융사의 디지털자산시장 진출이 경쟁적으로 나타났다. 포문은 하나은행이 열었다. 하나은행이 두나무 지분 6.55%를 약 1조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사례가 주목받은 이유는 은행이 디지털자산거래소 지분을 인수한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점유율 1위 사업자인 두나무 지분 인수라는 점에서도 관심도가 컸다.
그로부터 5일 뒤 두나무 지분 5.94%를 보유 중인 한화투자증권이 두나무 지분 3.9%를 약 6000억원에 추가로 매입하면서 3대 주주에 등극했다. 지난 28일엔 삼성그룹 계열사도 카카오 계열사의 두나무 지분 취득에 나서 지분 4%(증권 2%, 카드 1%, SDS 1%)를 약 6128억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이밖에도 한국투자증권은 OKX와 함께 코인원 지분 20%를 인수하기로 하는 등 금융사와 디지털자산시장 간 융합이 본격화되는 모습이다.
금융사들이 디지털자산시장에 진출하는 목적은 업권별로 차이가 있다. 먼저 은행권은 해외 송금 등에 활용될 수 있는 스테이블코인을 주된 사업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국내 4대 금융지주사 모두 2026년 신년사에서 스테이블코인 등 디지털자산을 미래 먹거리로 언급한 바 있다. 이들은 지난해부터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을 선제적으로 출원해 시장을 선점하고자 했고, 미국 스테이블코인 USDC(US달러코인) 발행사 서클의 제레미 알레어 대표가 방한했을 때도 함께 회동을 하며 이 시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관련 서비스 준비도 한창이다. KB국민은행은 USDC(US달러코인)를 활용한 해외송금 개념검증(PoC)에 나섰고, 신한은행·NH농협은행·케이뱅크는 한일 스테이블코인 송금 PoC 프로젝트팍스에 참여해 1단계 테스트를 완료하기도 했다.
‘플랫폼’ 노리는 미래에셋
반면 증권사들이 기대하는 건 플랫폼 사업이다. 대표적으로 미래에셋은 3.0 계획을 통해 로빈후드의 사업모델을 꾀하고 있다. 기존 주식 거래와 함께 디지털자산, 실물자산(RWA) 토큰화 사업을 한 플랫폼에 담겠다는 것이다. 특히, 미래에셋은 최근 미국 법인을 통해 미국 예탁결제원(DTCC) 토큰화 워킹그룹에 합류했다. 미래에셋은 이 워킹그룹에서 미국 국채, 주식 등 실물자산 기반 토큰증권의 운영 구조와 투자자 보호 체계, 결제 및 수탁 인프라 등 핵심 이슈를 글로벌 금융기관들과 논의할 예정이다.
이런 합종연횡 사례는 글로벌에서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미국에선 뉴욕증권거래소(NYSE) 모회사 ICE가 글로벌 디지털자산거래소 OKX의 지분을 인수했고, 일본에선 금융 대기업 SBI홀딩스가 거래소 비트뱅크 인수를 추진 중이다. 유럽에선 미카(MiCA)의 디지털자산업 간이 인가 조항을 통해 다양한 금융사들이 이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시장 기틀 잡을 ‘기본법’ 부재
국내 금융사와 디지털자산 사업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건 입법이다. 지분 매입 등 소극적인 사업 확장은 법이 없어도 할 수 있지만, 본격적 사업 진출을 위해서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제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스테이블코인 규율, 사업자 인가 등 시장 토대를 마련하는 기본법이다. 현재 디지털자산기본법은 지방선거 등의 일정으로 당정협의가 무기한 연기되면서, 사실상 표류 상태다. 선거 이후 이어질 후반기 국회 원구성 협상과 여야 전당대회 등으로 일정이 더 지연될 수 있어, 결국 빨라야 하반기에나 입법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기본법 입법 과정에서 가장 큰 숙제는 기존 디지털자산 업계와 의견 조율이다. 디지털자산 업계는 최대 쟁점인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 컨소시엄과 대주주 지분 제한을 반대하고 있다. 당정이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를 은행 중심으로 가져가고 대주주 지분 제한을 통해 전통금융 자본 투입을 유도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업계에서는 산업이 위축되고 혁신이 저해될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황현일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입법 계획을 발표한 뒤 한참 시간이 지났는데, 스테이블코인 등 신사업의 국내 활성화를 위해서는 빠른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혜진 서강대 교수는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도입되면 금가분리는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사의 디지털자산시장 진출을 위해선 금산분리(금융과 산업 자본 분리) 규제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