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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디지털자산법 또 ‘STOP’… 늪에 빠진 가상자산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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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자산기본법 입법이 다시 미뤄지는 가운데, 가상자산 거래소 지분 규제 등 핵심 쟁점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28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열린 ‘지주회사법과 디지털자산법의 현황과 전망’ 학술세미나에서는 법제 공백과 규제 설계의 방향성 문제를 둘러싼 우려가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박승두 한국디지털자산법학회장은 “지금 법안 진행이 지지부진하게 홀딩된 상황”이라며 “디지털자산 개념 자체가 법적으로 정립돼 있지 않아 다른 법 체계와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가상자산은 이름만 있을 뿐 헌법상 재산권, 민법상 물건, 형법상 재물 어디에도 명확히 들어가지 않는다”며 “개념 정립이 안 된 상태에서 개별법만 무성하게 만들어지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진명구 코빗 대외정책본부장 역시 “입법 자체가 아직 이뤄지지 않아 법리적 논의보다 입법 단계의 쟁점이 더 중요한 상황”이라며 “연내 입법도 쉽지 않고 실제 시행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 ‘지분 규제’가 최대 쟁점…재산권 침해 논란도
현재 입법 지연의 핵심에는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15~20% 수준으로 제한하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를 두고 업계와 금융당국 간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는 상황이다.
금융위원회는 거래소의 제도권 편입, 공적 인프라 성격, 특정 주주에게 집중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 문제 등을 고려해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가상자산업계 등은 사유재산권 침해, 주식시장과 차이 및 사후적 규제, 경영 책임의 분산 등을 이유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박 회장은 “기존 사업자들의 지분을 사실상 매각하라는 것인데 사유재산권 침해 문제와 소급 적용 문제가 있다”며 “주요 해외 국가 중 이런 지분 제한을 둔 사례는 없다”고 지적했다.
진 본부장도 같은 맥락에서 “적법하게 취득한 지분을 강제로 매각하게 하는 것은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과 신뢰보호 원칙 위반 소지가 있다”며 “헌법학계에서도 재산권 침해 우려가 크다는 입장이 다수”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도 이 쟁점은 여전히 정리되지 못한 상태다. 여당 내부 이견이 이어지면서 법안 상정 자체가 불투명해졌고, 입법조사처 역시 두 차례에 걸쳐 위헌 소지를 지적하면서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입법 지연은 정치 일정과도 맞물려 있다.
국회 정무위와 금융권에 따르면 27일로 예정됐던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일정은 다음 달 12일로 미뤄졌고, 다음 달 법안소위가 열리더라도 디지털자산기본법이 논의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전해졌다. 두나무·빗썸·코인원·코빗 등 가상자산거래소 대주주 지분 제한 규제를 둘러싼 여당 내부 이견이 정리되지 않은 탓이다.
법안 논의가 사실상 9월 정기국회 이후로 밀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법인 투자 허용을 앞두고 준비되던 시장 안정 장치 역시 사실상 멈춰선 상태다.
■ “한국만 느리다”…글로벌은 이미 제도화 경쟁
국내에서는 핵심 쟁점 정리조차 지연되면서 정책 불확실성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 주요국은 규제 명확성과 집행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박 회장은 “미국은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안을 두 달도 안 돼 통과시킬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며 “주도권 경쟁에 대한 위기감이 작용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진 본부장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증권이 아닌 디지털 상품으로 분류하면서 법적 명확성이 크게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또 “EU는 암호자산시장법 미카(MiCA)를 통해 세계 최초로 단독 입법을 완료했고, 일본은 스테이블코인을 전자결제수단으로 규정해 발행·상환 체계를 명확히 했다”며 “입법이 명확해지면서 실제 사업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시장에서도 이러한 격차를 주요 리스크로 보고 있다. 이준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이 계속 지연되면서 지방선거 이후 정기국회에서 논의될 가능성이 제기된다”며 “글로벌은 이미 사업이 진행 단계에 있어 하반기 가속화 국면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내는 제도화 지연 속에 스테이블코인 관련 기업들의 단기 부각 가능성은 제한적이지만, 글로벌과 정합한 방향으로 제도와 사업이 형성될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분석했다.
미국 역시 입법 과정에서 일부 지연을 겪고 있지만 방향성은 분명하다는 평가다.
스테이블코인 관련 클래러티 법안(Clarity Act)은 이자 지급 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쟁으로 상원 논의가 지연되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연내 통과 가능성을 여전히 열어두는 분위기다.
양현경 iM증권 연구원은 “Clarity Act는 이자 지급 문제로 지연되고 있지만 달러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큰 흐름 속에서 필요성이 높은 법안”이라며 “일정한 조정 과정을 거친 뒤 통과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어 “스테이블코인은 탈중앙화 자산이 아니라 달러 패권을 확장하는 디지털 인프라로 자리 잡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시장에서는 이미 민간과 글로벌 발행사를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 사업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제도 정비가 뒤따르지 못하면서 ‘시장과 규제 간 속도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발행·유통·공시·상장 등 전체 생태계를 아우르는 법안인 만큼, 입법 지연이 길어질수록 시장 불확실성도 확대될 수밖에 없다. 속도와 방향을 둘러싼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디지털자산 정책이 어떤 균형점을 찾을지 주목된다.
오늘경제 안채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