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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송 한은 총재의 혜안과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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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명 차현진 호서대 금융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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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https://www.thecolumnist.kr/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87&view_type=sm) - 입력 2026.04.24 11:04
- 수정 2026.04.25 16:11
신현송 한은 총재의 혜안과 모순
[차현진의 삼라만想]
신현송 한은 총재의 취임사를 읽고
[요약]
원화 국제화의 실체: 신현송 신임 한은 총재가 취임사에서 언급한 ‘원화 국제화’는 원/달러 외환거래 규제 완화를 통해 NDF(역외 차액결제 선도시장)를 양성화함으로써 환율 시장의 안정을 꾀하려는 실용적 포석으로 보인다.
정책 기조의 충돌: 그러나 이러한 외환 규제 완화 기조는 비은행 업자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엄격히 제한하려던 전임 이창용 총재의 거버넌스 정책과 충돌할 가능성이 크다. 한은이 이에 어떻게 정책 변경을 하려는지 주목된다.
지급 인프라의 전향적 혁신: 신 총재는 ‘통화 인프라’ 개선도 언급했는데, 이는 ‘지급인프라’를 오인한 것 같다. 본질인 ‘지급 인프라’ 개선에 집중해야 하며, 미 연준이나 영란은행처럼 비은행 업자에게도 중앙은행 예금을 허용하는 ‘파천황적’ 혁신이 필요하다 할 것이다.
신 총재가 세 번이나 강조한 ‘원화 국제화’
곤혹스러웠던 인사청문회를 뚫고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4월 21일 취임했다. 그동안 쌓아 올린 국제적 명성과 화려한 경력 때문에 워낙 많은 기대를 받는 분이라서 취임사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취임사에서 유독 눈에 띄는 말이 있었다. ‘원화 국제화’다. 무려 세 번이나 언급되었다.
지금까지 어떤 총재도 취임사에서 ‘원화 국제화’를 언급하지 않았다. 한국은행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추구하므로 ‘원화 국제화’는 한은의 일차적 목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외국환거래를 관장하는 정부의 목표에 가깝다(정부조직법 제30조). 그래서 예상 밖이다.
신현송 총재가 밝힌 ‘원화 국제화’는 종전의 개념과 다르다. 13년 전인 2013년 한국은행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아랍에미레이트(UAE) 등 3개 이슬람 국가 중앙은행들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연쇄적으로 체결한 적이 있다.
무역업자들이 원활하게 자금을 결제토록 돕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시 김중수 한은 총재는 그것을 두고 “원화 국제화라는 큰길에서 작은 한 걸음을 떼었다”고 자평했다. 김 총재의 원화 국제화는 위안화 국제화의 ‘짝퉁’이었다.
중국은 일대일로 계획의 일환으로 후진국에게 통화스와프 계약을 통해 위안화를 빌려준 뒤 그것으로 중국 물건을 사도록 한다. 그리고 그런 작업을 ‘위안화 국제화’라고 부른다. 우리의 눈으로 보자면, 뻔한 상업 차관 제공에 불과하다.
그런데 중앙은행간 통화스와프 계약을 원화 국제화와 연결짓는 것은 어색하다. 그렇다면 한중 중앙은행간 통화스와프 계약은 원화 국제화인가, 위안화 국제화인가? 참고로 지난 2008년 미 연준과 한미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한 이성태 총재는 그것을 ‘원화 국제화’라고 말하지 않았다.
NDF시장의 ‘양성화’를 예상한다
신임 신현송 총재가 생각하는 ‘원화 국제화’는 중국식 ‘위안화 국제화’가 아니다. 취임사의 맥락으로 볼 때 신현송 총재의 원화 국제화는, 외환 규제 완화를 통한 역외 차액결제 선도시장(NDF) 양성화와 원화를 통한 국제 송금 활성화를 의미한다.
NDF 시장은 태생적으로 외환 규제의 ‘산물’이다. 외국인들은 국내에서 원화를 매매할 때 여러 가지 규제를 받기 때문에 역외에서 거래한다. 미래의 환율을 예측하여 매매 계약을 맺고(선도계약), 만기일이 되면 역외 금융기관을 이용해서 현물 환율과의 차액을 정산한다. 정산할 때는 원화가 아닌, 달러화를 주고받는다. 그래서 NDF 거래 즉 ‘차액만 (외화로) 주고받는 거래’라고 부른다.
신현송 총재가 NDF 시장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지금 그 시장이 비대해져서 원/달러 환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의 고환율은 반도체 수출 호조나 증시 호조와는 무관하다.
NDF 시장에 만연한 환율상승 기대로 쏠림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고환율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신 총재는 NDF 시장을 축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 같다.
사실 달러화나 유로화 등 기축통화를 발행하는 나라에서는 NDF 시장이 없다. 외국인의 외환거래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다. 통상적인 외환 선물거래나 선도계약만 있다. 결론적으로 원화 NDF 시장은 외환 규제의 산물이다. 그러니까 신 총재의 ‘원화 국제화’는 외환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부와 함께 노력해 나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스테이블코인’ 발행 거버넌스 입장이 바뀌나
바로 거기서 새로운 의문이 제기된다. 외환 규제를 완화하면, 지금까지 한국은행이 심혈을 기울여 온 노력이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를 직접 발행하는 것을 전제로 국내 상업은행들과는 ‘한강 프로젝트’를, 해외 중앙은행과는 ‘아고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은행이 아닌 ‘업자’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그것이 국경을 넘나들면, 외환관리에 큰 구멍이 생긴다는 걱정이 자리한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느니 차라리 중앙은행이 디지털 시대의 중심에 서겠다는 것이다.
전임자인 이창용 총재는 온갖 비판과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비은행 업자’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규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컨소시엄에서 은행들의 지분이 50%를 넘어야 한다는 입장을 지켰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이 늦어지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이창용 총재가 제기했던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의 지배구조’ 문제다.
그런데 신 총재는 취임사에서 불쑥 ‘원화 국제화’의 일환으로 외환규제 완화를 통한 NDF 시장 양성화를 언급했다. 그렇다면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의 지배구조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닌가?
‘지급 혁명’이라 불리는 현재의 큰 흐름 속에서 새 총재의 취임과 더불어 한국은행의 항로가 크게 바뀌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신 총재가 외환 규제 완화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의 자유로운 국경 이동을 어떤 방법으로 조화시킬지 궁금하다. 아마 모든 이들이 주목할 것이다.
통화인프라인가? 지급인프라인가?
신 총재는 취임사에서 ‘통화 인프라’라는 말을 썼다. 외환시장 24시간 개장과 역외 원화 결제 시스템 구축을 통화 인프라 개선의 예로 들었다. 그것이 화폐의 신뢰와 원화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화 인프라는 아주 생소한 표현이다. 신 총재가 몸담았던 국제결제은행(BIS)를 포함해서 국제사회에서는 ‘지급 인프라’(payment infrastructure)라는 말을 훨씬 많이 쓴다. 일반적으로 ‘화폐’(통화)와 ‘지급’은 차원이 다른 말이다. 일반인도 아닌 한국은행이 그것을 구분하지 않는다면, 실망이다.
화폐는 가치평가의 기준(계산단위)이요, 지급수단이요, 가치저장 수단이다. 2000년 전 로마의 법학자 율리우스 파울루스의 생각인데, 지금까지도 흔들리지 않는 명제다. 그런데 블록체인기술을 이용한 불가사의가 등장했다.
계산단위나 가치저장의 기능을 뺀 채 지급만 담당하는 요물이다. 신속하고 편리한 지급만 추구할 뿐, 안정된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부가 은행 예금처럼 보호하지도 않는다.
문제는 지급 기능만 갖췄을 뿐인데도 그것을 화폐의 대체물로 보는 경향이다. 위상수학(topology)을 이용하자면, 구조를 잘못 파악하는 것이다.
반지, 도너츠는 구멍이 몇 개인가
반지나 도너츠의 구멍은 한 개다. 긴 빨대나 파이프의 구멍도 한 개다. 하지만 긴 빨대나 파이프의 구멍은 두 개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다. 입구와 출구가 멀리 떨어져 있어 확연하게 구분되기 때문이다. 입구와 출구라는 기능은 나뉘지만, 빨대와 파이프는 구조적으로 반지, 도너츠와 다르지 않다.
지금까지 화폐는 반지나 도너츠에 가까웠다. 계산단위, 지급수단, 가치저장 기능이 바짝 붙어있었다. 그런데 블록체인기술이 등장하면서 계산단위와 지급수단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반지와 도너츠가 긴 빨대나 파이프처럼 길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지급수단이라는 한쪽 구멍의 기능을 전체 구조(화폐)로 착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비트코인이 미래의 화폐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그 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은행이 비슷한 착각을 한다. CBDC나 예금토큰의 유통을 위한 플랫폼은 ‘지급 인프라’이지 ‘통화 인프라’가 아니다.
중앙은행과 상업은행의 두 단계로 구성되는 현대 화폐공급 시스템(은행 제도)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면, 블록체인기술로 대변되는 지급 혁명은 ‘통화 인프라’와 무관하다. ‘지급 혁명’은 화폐 혁명이 아니며, 통화 인프라가 아닌 지급 인프라를 혁신할 뿐이다(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지급 기능이 기존의 화폐와 은행 제도를 대체할 수 없다. 전 세계적으로 보급된 신용카드를 보면 분명하다. 신용카드 때문에 상업은행들이 망하거나 화폐 질서가 망가지지 않았다. 그러니 스테이블코인이든, 다른 것이든, 새로운 지급수단의 등장이 화폐를 다루는 중앙은행이나 상업은행 제도를 건드리지 않는다.
따라서 신현송 총재의 취임사에 담긴 ‘통화 인프라’라는 단어는, 큰 실수라고 보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마추어적이다. 인사청문회 때문에 잠시 머리가 어지러운 BIS 출신의 새 총재를 직원들이 제대로 보필하지 못했다고 해석된다.
한은, 통화와 지급은 구분할 수 있어야
신현송 총재 아래서 한국은행은 화폐와 지급을 확실하게 구별해야 한다. 코넬 대학교 법과대학의 댄 오레이(Dan Awrey) 교수와 같은 사람이 수년 전부터 누누이 강조하는 바다.
화폐와 지급은 다른 문제이기 때문에 은행과 비은행이 공존할 공간이 생긴다. 기존 은행 제도를 그대로 두고서도 지급 인프라에는 비은행의 접근을 허용할 수 있다. 바로 그런 배경에서 지난해 미 연준과 영란은행이 그 가능성과 의사를 살짝 비췄다.
지금까지는 중앙은행이 상업은행하고만 예금 거래를 했다. 중앙은행이 일반 기업이나 가계와 예금 거래를 하는 것은, 일제강점기 조선은행 모델이다. 중앙은행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19세기 이전의 영업 방식이다.
그런데 이제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자처럼 대출 없이 수신만 담당하는 기관이 등장한다. 경제학자들은 ‘내로우’(narrow)은행이라고 부른다. 과거에는 불가사의로 취급했던, 이런 신종 업자들을 은행으로 볼 것이냐, 기업으로 볼 것이냐를 두고 세계 중앙은행들이 혼란에 빠졌다.
오랜 고민 끝에 미 연준과 영란은행은 오래된 도그마를 집어 던지기로 했다. 상업은행으로 볼 수 없는 기관들도 중앙은행에 예금을 맡기고 지급의 신속성과 안전성을 담보토록 제도를 바꾸려고 한다. 블록체인기술 등장 이상의, 파천황적(破天荒的)인 변화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화폐와 지급을 혼동하면 안 된다. 미 연준과 영란은행의 몸부림과 시도의 깊은 뜻을 헤아려야 한다.
취임사에 담긴 ‘원화 국제화’와 ‘통화 인프라’라는 말 때문에 신현송 총재의 취임사는 90점을 넘길 수 없다. ‘외환 규제 완화’는 원화 국제화가 아니다. 외환 규제 완화는 원화 국제화의 충분조건이며, 필요조건이 아니다. 또한 SWIFT(국제은행간통통신협회 통신망)라든가 BOK-Wire(한국은행 금융결제망)는 통화 인프라가 아닌 ‘지급 인프라’다.
그렇게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모든 용어 사용에 주의를 기울여야 폭풍처럼 몰아치는 지급 혁명 속에서 한국은행이 능동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래야 한국이 금융에서도 선진국이 된다.
어리바리한 개념과 수사로는, 중국처럼 영원히 제조업 강국에만 머물게 된다. 지급결제학회 부회장이자,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 출신의 충언이다.
※ 차현진 교수는 한국은행에서 39년을 근무한 금융전문가다. 한국은행 조사부, 자금부, 금융시장국 등 정책관련 부서를 거쳤고 워싱턴사무소장, 인재개발원장, 금융결제국장, 부산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비서실과 미주개발은행(IDB) 등에서도 근무했다.
예금보험공사 이사를 거쳐 현재는 호서대학교 디지털 금융경영학과 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애고니스트의 중앙은행론’, ‘숫자 없는 경제학’, ‘금융오디세이’, ‘중앙은행 별곡’, ‘법으로 본 한국은행’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금융 에세이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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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 호서대 금융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