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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고속도로’ 개통…디지털 주도권 박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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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한국 조채원 기자] 한국은행(한은)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시스템 정식 도입과 예금 토큰 상용화를 위한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사업에 본격 착수, 원화 스테이블코인이 디지털 금융 주도권 경쟁에서 효율성을 높일 수단으로 주목된다. 이번 사업은 중동 분쟁으로 격화한 ‘탈 달러화’ 흐름과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 지명자의 발언으로 대변되는 ‘디지털 달러 패권’에 대응해 원화 주권을 지키려는 국가 금융 안보 전략으로 적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실험 넘어 상용화 문 열린 원화 스테이블코인

한은은 이번 단계에서 110조원 규모 국고금 집행 시범 사업에 예금 토큰을 적용, 투명성과 효율성을 검증하며 개인 간(P2P) 송금과 생체 인증 결제 등 혁신 서비스를 대거 도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1단계에서 제조·발행·유통·환수·폐기 전 과정이 원활하게 작동함을 확인함에 따라 CBDC를 인공지능(AI) 에이전트와 토큰화한 증권 등의 지급수단으로 기능하도록 미래 디지털 경제 발전을 지원하는 단계로 나아간다는 구상이다.

한은은 블록체인 기반 시스템 구축을 완료한 데 이어 KB·신한·우리·하나·중소기업·농업·부산은행 등 기존 7개 은행에 경남은행과 iM뱅크를 더한 총 9개 은행 체제로 2단계 사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정부·여당도 디지털자산기본법 2단계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은행 지분이 50%에 1주를 초과하는 컨소시엄에 먼저 발행을 허용하는 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글로벌에서도 스테이블코인 제도화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미국 상원은 지난 24일(현지 시간) 스테이블코인 법안인 클라리티(CLARITY) 법안의 핵심 쟁점인 ‘스테이블코인 이자·보상 지급 가능 범위’에 대한 합의 내용을 공개했다. 발행사가 보유자에게 직접 이자를 주는 것을 금지하는 방향을 골자로 하는 해당 법안은 스테이블코인이 이자 붙는 예금처럼 기능해 기존 은행권의 수신 기반을 흔드는 것을 방지하려는 조치다. 아울러 이자 지급에 따른 증권성 논란을 회피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순수한 지급 결제 수단으로 묶는 것을 의도로 한다.

해당 규제로 인해 스테이블코인이 고도화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발행사가 직접 이자를 줄 수 없어 스테이블코인 자체로 수익을 낼 순 없지만 수익성 금융 상품으로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사용자가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머니마켓펀드(MMF) 토큰이나 토큰화한 국채(RWA) 등 이자가 발생하는 별도 상품에 투자하는 길은 여전히 열려 있다”며 “스테이블코인은 그 자체로 수익성 금융 상품으로 진입하는 가장 효율적인 ‘입구’이자 ‘현금 복제물’로서 지위를 굳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화폐 재정의하는 ‘능동적 자산’

변화의 바람은 민간에서 먼저 일고 있다. 아직 임자가 없는 ‘기계 간 경제’(M2M)나 ‘나노 결제’(Nanopayments) 시장을 선점하려는 물밑 작업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미국 경제지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결제 거물 기업인 스트라이프는 최근 스테이블코인 인프라 기업 ‘브리지’(Bridge)를 11억 달러(약 1조 6573억원)에 인수하며 디지털 자산 시장에 사활을 걸었다. 달러 연동 스테이블코인인 USDC의 발행사이자 골드만삭스 등의 투자를 받은 대표적인 규제 준수형 기업인 서클은 1원 이하 소수점 단위 결제가 가능한 나노 결제 기술을 테스트 중이다. 제러미 얼레어 서클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5일 실적 발표에서 “스테이블코인이 M2M의 자생적 상거래(네이티브 커머스)가 될 것”이라며 ‘화폐의 지능화’를 예고했다.

지능화된 화폐는 화폐의 본질적 기능을 재정의한다. AI와 스테이블코인이 연계해 화폐 스스로 조건을 판단하고 집행하는 기능이 생성됨에 따라 스테이블코인은 프로그래밍이 가능한(Programmable) 특성을 갖춘 능동적 자산으로 평가된다.

특히 조건부 자율 집행(Smart Contract)이 그 중 핵심 변화로 꼽힌다. 물류 센서 데이터와 연동해 특정 조건 충족시에만 대금을 지불하는 코드를 내장할 수 있는 것이다.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가치를 교환하는 경제에서는 스마트 계약 기반 결제 시스템이 유리하며, 특히 빈번한 소액 결제시 중개 수수료를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게 된다.

무엇보다 스테이블코인은 에이전틱 커머스의 핵심 동력으로 꼽힌다. 인간의 개입 없이 AI 에이전트가 스스로 판단하고 결제하는 기계 경제(M2M) 환경에서 스테이블코인은 시스템을 구동하는 가장 효율적인 연료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AI 에이전트는 생성형 AI 기반 에이전트가 사용자 대신 상품 탐색·비교·구매까지 수행하는 자동화된 커머스 형태로, AI가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 호출 한 번으로 즉시 자금 가용성을 확인하고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결제를 완료할 수 있게 된다.

◇“수익보다 주권”…달러 패권에 맞서다

전 세계가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중심으로 자국 화폐 주권을 지키기 위한 인프라 구축에 착수,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결제망이 닿지 않는 무주공산 시장에서 초연결 경제의 혈류로서 데이터 주권을 사수하는 보루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근 중동 전쟁과 케빈 워시 지명자로 인해 전 세계가 달러 패권에 대항, 플랫폼 선점과 더불어 결제 비용을 낮추는 효율성 측면에서 혁신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케빈 워시 지명자는 강한 달러와 미국 국채 유동성 확보를 중시한다. 미국 국채 시장의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달러 지배력을 디지털 영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해 미국 국채 수요를 뒷받침하는 ‘전략적 금융 무기’로 격상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저서 ‘Money Matters: The US Dollar, Cryptocurrency, and the National Interest’에서 “좁고 신중하게 고려된 디지털 달러 체제는 통화의 건전성, 주권적 통제, 금융 혁신과 경쟁, 그리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보장하는 데 가장 유리하다”며 “미국 정책 입안자들이 새로운 기술적 프런티어를 인식하지 못한다면 미국은 화폐 패권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디지털 자본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USDC가 미국 국채라는 안전 자산에 기반해 신뢰도를 높인다면 국내 투자자들이 원화 자산을 매각하고 디지털 달러로 갈아타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원화는 가치가 하락하고 환율 상승 압박을 받으며 국내 통화 정책 자율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케빈 워시 체제 하의 미국이 달러 패권을 재설계하는 상황에서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예금 토큰 인프라를 조속히 안착시켜 디지털 통화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26일 NH투자증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USDC 유통량이 전년 대비 72% 급증한 753억 달러(약 113조 4545억원)를 기록했고, 스테이블코인 유통 점유율 역시 28%로 전년 동기 대비 4%포인트 상승했다. 미국 정부의 스테이블코인 정책 기조에 따라 디지털 달러 패권이 이미 실물 경제에 깊숙이 침투했음을 시사한다.

◇통화 주권 사수와 전략적 반사이익

미국의 엄격한 ‘이자 지급 금지’ 규제는 한국의 예금 토큰 인프라에 전략적 반사이익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이자 지급 금지 조항으로 인해 결제 효율성에 집중하는 사이, 한국은 안정성을 기반으로 예금 토큰 체계를 선제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예금 토큰은 기존 은행 시스템 내부에서 발행하므로 법적·제도적 보호가 명확하며 미국식 규제 논쟁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한은은 ‘프로젝트 한강’으로 구축한 예금 토큰 인프라를 바탕으로 실시간 거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오는 10월까지 외부기관 종합 컨설팅을 진행해 제도적·기술적 고도화를 추진한다. 환율과 결제 안정성 확보를 위해 국제결제은행(BIS)이 주도하는 ‘프로젝트 아고라’와의 상호운용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기술적 완결성이 국내 결제망의 효율화와 더불어 원화 기반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유동성 공급 채널’을 완성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이 발행하는 예금 토큰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가장 강력한 담보 자산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서클이 미국 국채를 담보로 USDC의 신뢰도를 확보하듯, 한은의 CBDC와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시중은행의 예금 토큰을 연계해 변동성을 최소화한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구조를 설계할 수 있다는 이유가 작용했다.

특히 LG CNS와 같은 정보기술(IT) 기업의 인프라 구축 기술력을 활용해 종합 컨설팅에서 실시간 거래 모니터링 시스템을 완비하는 것이 안착의 핵심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LG CNS가 보유한 토큰증권(STO)과 블록체인 통합 인프라 기술이 원화 스테이블코인과 예금 토큰 간 실시간 교환을 지원하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예금 토큰이나 스테이블코인과 같은 블록체인 기반 디지털화폐가 기존 카드나 계좌 중심 결제 방식보다 초소액·고빈도 결제에 적합한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어, LG CNS는 한은과 에이전틱 AI 기반 디지털화폐 자동 결제 시스템 등을 국내 최초로 실증하며 스테이블코인 결제를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원은 “스테이블코인, STO 등의 개화기 시대를 맞이해 LG CNS가 보유한 블록체인 역량에 결제 안정성이 뛰어난 스테이블코인 기술까지 더해 디지털 자산의 발행부터 유통·결제에 이르는 생태계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인프라를 제공하면서 성장성 등이 부각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채원 기자 cwlight22@hankook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