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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블코인, 산업 전반 확산…디지털 금융 판도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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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한스경제 전시현 기자 | 스테이블코인이 거래소 밖으로 나왔다. 가상자산 투자자들의 전문 도구로만 여겨지던 스테이블코인이 이제는 은행 창구와 편의점 계산대, 게임 서버와 물류 창고까지 파고들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스테이블코인이 금융권과 빅테크는 물론 대형 유통기업과 자본시장까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 및 활용 경쟁에 동시에 뛰어들면서 국내 디지털 금융의 뼈대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 은행·빅테크, 발행권 선점 경쟁

전장(戰場)의 중심에는 발행권이 있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누가 먼저 발행하느냐가 향후 10년간 국내 디지털 금융의 주도권을 결정한다는 공감대가 업계 전반에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각각 독자 컨소시엄을 이끄는 유력 주자로 꼽히는 가운데 우리은행은 관련 상표권 20여건을 선제 출원했다. 하나금융그룹은 그룹 차원의 디지털자산 전담 태스크포스(TF)를 이미 가동 중이다. 4대 금융지주 모두 출발선에 선 셈이다.

빅테크 진영도 속도를 높이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과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는 합병을 공식화했다. 합산 기업가치 20조원 규모의 이 결합이 완성되면 네이버파이낸셜이 발행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업비트에 상장하고 네이버페이 결제에 연동하는 풀스택 생태계가 구축된다.

카카오는 다른 길을 택했다. 카카오톡을 유통 채널로, 카카오페이·카카오뱅크를 결제·금융 인프라로, 카카오게임즈 등 콘텐츠 자산을 소비처로 삼아 스테이블코인이 그룹 안에서 발행부터 정산까지 순환하는 구조를 설계 중이다. 금융위원회는 은행 중심 컨소시엄(지분 50%+1주)의 발행을 우선 허용하되, 기술기업의 최대주주 지위도 인정하는 절충안을 국회에 보고했다.

오경석 두나무 대표는 지난해 9월 ‘업비트 D 컨퍼런스(UDC) 2025’에서 “스테이블코인은 금융과 블록체인을 연결하는 가교이자 금융 주권의 핵심”이라며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지원한다면 한국 금융이 아시아를 거쳐 글로벌로 뻗어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 유통·증권·게임까지…전 산업으로 확산

스테이블코인이 매력적인 이유는 단순하다. 결제 즉시 정산되고 24시간 365일 멈추지 않으며 국경을 넘어도 환전 비용이 없다. 이 특성이 유통·증권·게임 등 각 산업의 고질적 비효율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부상했다.

유통 분야에서는 신한은행이 롯데·신세계 등 대형 유통기업과 손잡고 원화 스테이블코인 기반 지급결제 및 예치금 관리 모델을 테스트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소비자가 매장에서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하면 판매 대금이 즉시 정산되고 그 자금이 금융 상품에 재예치되는 순환 구조다.

자본시장도 움직였다. 우리은행은 삼성증권·SK증권과 토큰증권(STO) 플랫폼을 공동 개발 중이다. 스테이블코인을 증권형 토큰의 실시간 결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현행 T+2일 결제 주기가 실시간으로 단축되는 구조다. 기술 검증도 마쳤다. 스타트업 비댁스는 지난해 9월 우리은행 에스크로 계좌에 원화를 1대 1로 예치하는 방식의 원화 스테이블코인 KRW1을 발행했고, 이를 토큰증권 결제의 실질적 원형으로 업계는 평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화폐금융 관련 7개 학회가 공동 개최한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통한 K-금융 대전환’ 심포지엄에서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스테이블코인은 가상자산 시장과 자본시장에 있어 지급결제 인프라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블록체인 결제 방식을 도입하지 않으면 코스피 5000 도약을 위한 인프라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 해외는 이미 실전… 비자는 100개국, JP모건은 공동 발행

우리나라가 스테이블코인 활용과 관련한 제도를 다듬는 사이 해외에선 이미 수백억 달러 규모의 활용으로 앞서 갔다. 비자는 스테이블코인 연동 카드 프로그램을 현재 18개국에서 올해 말까지 100개국 이상으로 확대한다고 선언했다. 스테이블코인 카드 월간 결제액은 2023년 초 1억달러에서 2025년 말 약 15억달러로 15배 팽창했다. JP모건·씨티·뱅크오브아메리카·웰스파고 등 미국 4대 은행도 공동 스테이블코인 프로젝트를 공식 논의 중이다.

유럽에서도 9개 은행이 유로화 연동 스테이블코인 발행 계획을 공동 발표했다. 홍콩에서는 스탠다드차타드·애니모카 브랜즈·홍콩텔레콤이 컨소시엄을 이뤄 메타버스 결제와 통신사 간 정산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전통 금융, 웹3 게임, 통신이라는 이질적인 세 축이 하나의 스테이블코인 생태계 안에 묶인 조합이다.

◆ 규제 갈등이 남긴 마지막 관문

민간의 속도와 달리 제도의 시계는 느리다. 한국은행은 스테이블코인 발행 승인에 만장일치제 도입을 주장하며 금융위원회와 맞서고 있다. 사실상의 거부권을 통해 통화주권을 지키겠다는 명분이지만 시장 진입 속도를 늦추는 변수가 된다는 우려가 크다.

은행 지분 51% 의무화 조항을 두고도 양측은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이 조항이 유지되면 카카오·네이버 같은 기술기업은 구조적으로 종속적 위치에 놓인다. 완화하면 금융 안정성 통제력이 약해진다. 중재안이 양쪽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법안 처리의 분수령이다.

이종섭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디지털 금융 체계를 통해 전통 자본시장의 지급결제 체계와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두 축이 같이 움직이고 있다”며 “안정성과 혁신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도 “새로운 디지털 자산 산업화 시장이 명확한 규제의 울타리 내에서 안착할 수 있도록 2단계 입법 등 법적 기틀을 마련하겠다”며 속도를 내겠다는 뜻을 공식 천명했다.

회계·컨설팅 딜로이트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기업 간 정산(B2B)과 국경 간 결제 영역에서 기존 금융 인프라를 빠르게 대체하는 단계에 진입했다”며 “문제는 제도 공백”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행과 금융위원회가 규제 권한을 두고 논쟁하는 사이 테더와 서클이 발행한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기업 간 정산과 글로벌 결제 인프라를 선점할 것”라고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권 전문가는 “규제 체계가 정립되지 않으면 국내 기업들은 원화 기반 디지털 결제 인프라 대신 달러 스테이블코인에 의존하는 구조로 고착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는 결제 주권 측면에서도 중요한 정책 과제가 될 수 있다”고 제기했다.

전시현 기자 jsh418@sporbiz.co.kr

전시현 기자

jsh418@sporbiz.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