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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의 블록체인 아카이브] 번지수 틀린 규제, ‘스테이블코인 이자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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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진 서강대학교 AI⋅디지털자산 최고위과정 주임교수] 대한민국이 스테이블코인 발행과 유통을 규율하는 디지털자산 기본법안의 막바지 논의에 한창이다. 미국과 영국은 한 발 앞서 이미 규제의 틀을 구체화하고 시행 단계에 접어들었다.

특히 최근 미국의 클래리티법안(CLARITY Act)을 둘러싼 논쟁의 중심에는 ‘스테이블코인 이자 지급 금지’ 조항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 금융당국 역시 이를 글로벌 스탠더드로 받아들여 유사한 규제를 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시장의 실제 작동 원리를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규제가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낡은 잣대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당국이 스테이블코인의 이자 지급을 금지하려는 논리는 명확하다. 가치가 고정된 코인에 이자까지 붙는다면, 이는 사실상 은행의 ‘예금’과 다를 바 없어진다. 이는 전통 은행권의 예금 이탈을 초래하는 이른바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된다.

더불어, 이자를 지급하는 순간 ‘투자의 대가로 수익을 기대하게 만드는’ 증권(투자계약)으로 분류될 법적 위험도 커진다. 따라서 스테이블코인은 순수한 ‘결제 및 교환 수단’으로만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 규제 당국의 일관된 시각이다.

실효성의 한계: 이자는 발행사가 주지 않는다.

감독 당국의 시선은 ‘돈’인가 ‘증권’인가

그러나 이 규제는 첫 단추부터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현실의 크립토 시장에서 유저들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수익을 얻는 경로는 발행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테더(USDT)나 서클(USDC) 같은 발행사가 개인 지갑에 직접 이자를 지급하는 일은 거의 없다. 유저들은 코인베이스, 바이낸스 같은 ‘가상자산 거래소’에 스테이블코인을 예치하고 그 대가로 리워드를 받거나, 자산 운용 플랫폼을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

법으로 ‘발행사’의 이자 지급을 막더라도, 유통 시장인 거래소가 자체 마케팅 비용이나 스테이킹 운용 수익을 재원으로 유저에게 수익(Yield)을 제공하는 행위까지 원천 봉쇄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규제는 껍데기만 남고, 시장은 언제나처럼 우회로를 찾을 것이다.

디파이(DeFi)와 일드 파밍, ‘이자’라는 개념의 한계

더 근본적인 모순은 디파이 생태계에서 발생한다. 디파이에서 스테이블코인을 활용한 ‘일드 파밍(Yield Farming)‘은 생태계를 구동하는 핵심 엔진이다. 유저가 탈중앙화 거래소(DEX)의 유동성 풀에 스테이블코인을 공급하고, 그 대가로 발생하는 ‘거래 수수료’를 분배받는 이 행위를 과연 전통 금융의 좁은 개념인 ‘이자(Interest)‘로 규정할 수 있을까?

은행이 자금을 대출하고 받는 이자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유동성·보안 유지를 위해 생태계 기여자에게 주어지는 ‘보상(Reward/Yield)‘은 그 본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새로운 기술적 메커니즘을 과거 금융 사전의 단어 하나로 옭아매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충돌을 낳는다.

나아가 다이(Dai)나 에테나(USDe)처럼 스마트 컨트랙트에 의해 수익이 자동 창출·분배되는 ‘탈중앙화 스테이블코인’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제기한다. 국경도 없고, 통제할 중앙 주체도 없는 코드 집합체에게 “이자 지급을 중단하라”는 행정 명령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혁신을 품을 수 있는 규제 프레임 필요

스테이블코인 이자 금지 규제의 의도 자체는 이해할 수 있다. 은행 시스템의 안정성 보호, 투자자 보호, 자금세탁 방지 등의 목표는 정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규제의 ‘대상’과 ‘방법’이 현실 시장의 구조와 심각하게 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진정으로 실효성 있는 규제를 원한다면, 발행사를 향한 금지령보다 실제 수익이 발생하고 유통되는 경로인 거래소·디파이 플랫폼에 대한 체계적 관리 감독이 선행되어야 한다. 나아가 ‘이자’와 ‘유동성 보상’을 동일 선상에서 다루는 개념적 오류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새로운 금융 메커니즘에는, 전통 금융 규제의 틀을 그대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본질을 반영한 새로운 규제 언어와 체계가 필요하다.

규제의 목적이 혁신을 억누르는 것이 아닌, 혁신이 안전하게 뿌리내릴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번지수를 제대로 찾는 규제만이 시장의 신뢰를 얻고, 한국이 디지털 금융 생태계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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