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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스테이블코인-①] 법제화 밑그림 완성… ETF·예금토큰 한번에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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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화 스테이블코인 법제화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던 흐름에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정부가 올해 1분기 안으로 ‘한국판 스테이블코인’ 규율 체계를 확정하고,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도입을 전격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하면서다.
발행 주체를 둘러싼 논쟁으로 길어졌던 2단계 입법이 방향성을 잡으면서, 국내 디지털자산 정책도 규제 중심에서 제도화와 활용으로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발행 주체, ‘은행 중심 컨소시엄’으로 가닥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에서 가장 첨예했던 쟁점은 발행 주체였다. 정부안의 큰 틀은 은행이 지분 50%+1주 이상을 보유하는 컨소시엄부터 발행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다. 은행을 중심에 두되, 단독 발행이 아닌 복수 주체 참여를 전제로 한 구조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최근 민주당 디지털자산 TF(태스크포스)에 보고한 디지털자산기본법 주요 쟁점 조율 방안에서 스테이블코인 발행 주체와 관련해 은행이 과반(50%+1)을 차지하는 컨소시엄부터 허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다만 은행법상 은행은 다른 회사 지분을 최대 15%까지만 보유할 수 있어, 이 안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지분 요건을 충족하려면 최소 4개 이상의 은행이 컨소시엄에 참여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이 은행 자회사 업종에 스테이블코인 발행업을 추가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현재 스테이블코인과 디지털자산기본법을 둘러싸고 총 8개의 법안이 발의된 상태다. 일부 법안은 발행 주체를 ‘금융위원회의 인가를 받은 주식회사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금융기관’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다.
발행 자격을 둘러싼 시각 차이가 컸던 만큼, 민주당 디지털자산 TF는 정부안과 다른 방향의 법안을 별도로 마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 정무위원회 논의를 거쳐 최종 법안이 도출될 가능성이 크다. 국회는 2월 본회의 처리를 목표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김지원 KB증권 연구원은 “통화정책 안정성과 금융 리스크 최소화라는 금융 당국의 입장과 혁신 추진이라는 두 가치를 조화롭게 반영한 최종 법안이 도출되기까지 아직은 진통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계기관 참여 방식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당초 논란이 됐던 스테이블코인 관계기관 합의체는 만장일치 구조가 아닌 ‘협의체’ 형태로 법제화하는 방향이 유력하다. 이는 스테이블코인 발행 인가 과정에서 한국은행 등을 포함한 관계기관이 금융위원회에 의견을 제시하되, 최종 판단은 금융위원회가 맡는 구조다.
만장일치 합의를 요구할 경우 인가 과정이 과도하게 경직될 수 있다는 우려가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정책 공조는 유지하되, 제도 운용의 속도와 유연성을 확보하겠다는 절충안에 가깝다.
■ 1분기 내 규율 확정… ‘가상자산 2단계’ 본격화
재정경제부는 이날 발표한 ‘2026년 경제성장전략’을 통해 디지털자산 제도화 로드맵을 구체화했다. 핵심은 올해 1분기 안으로 한국판 스테이블코인 규율 체계를 확정하겠다는 점이다. 그간 규제 일변도였던 가상자산 정책 기조가 제도권 편입과 산업 육성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정부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인가제로 운영해 자본력과 내부 통제 능력을 갖춘 사업자만 시장에 진입하도록 할 방침이다. 발행액 100% 이상을 안전자산으로 구성된 준비자산으로 보유하도록 의무화하고, 이용자의 상환청구권을 법으로 명시하는 내용도 포함된다.
이는 과거 테라·루나 사태처럼 알고리즘 구조의 스테이블코인 붕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장치다. 1코인당 1원의 가치를 유지하려면 그에 상응하는 준비자산을 반드시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도적으로 고정하겠다는 의미다.
아울러 정부는 국경 간 스테이블코인 이전과 거래에 대한 규율도 함께 마련한다. 무역 결제와 해외 송금 분야에서 블록체인 활용도를 높이는 동시에, 외국환거래법을 우회한 거래를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를 위해 전문가 의견 수렴과 연구용역, 해외 사례 검토를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 비트코인 현물 ETF도 추진… 기관 자금 길 열린다
이번 전략에는 디지털자산 현물 ETF 도입 방침도 포함됐다. 그간 국내에서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ETF 기초자산으로 인정되지 않아 현물 ETF 거래가 불가능했다.
정부가 현물 ETF 도입을 공식화하면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한 지 약 2년 만에 국내 자본시장에도 가상자산 간접투자 상품이 등장하게 된다. 연기금과 법인 등 기관투자자의 시장 진입이 가능해지는 만큼, 국내 가상자산 시장 구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는 공공 부문에서도 블록체인 활용을 확대한다. 오는 2030년까지 전체 국고금 집행액의 3분의 1을 디지털 화폐, 이른바 ‘예금토큰’ 형태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보조금과 바우처 등을 프로그래밍 가능한 디지털 화폐로 지급하면 자금 흐름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어 부정수급을 차단하고 행정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구상이다. 정부는 시범사업 결과를 토대로 한국은행법과 국고금관리법 등을 개정해, 블록체인 기반 지급·결제를 위한 법적 근거를 올해 안에 마련할 계획이다.
■ 글로벌은 스테이블코인 급성장… 커지는 격차 압박요소
국내 법제화가 지연되는 사이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은 급성장했다. 지난해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거래액은 33조 달러(약 4경 8000조 원)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친가상자산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집권으로 정책 환경이 우호적으로 바뀐 영향도 컸다는 분석이다.
전날(현지시각)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로벌 가상자산 분석업체 아르테미스 애널리틱스 집계 결과 지난해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33조 달러로, 전년 대비 71.9% 증가했다. 서클 인터넷 그룹이 발행한 USDC가 18조 3000억 달러로 가장 많았고, 테더 홀딩스의 USDT가 13조 3000억 달러로 뒤를 이었다.
미국은 ‘지니어스(GENIUS) 법’을 통해 달러 기반 스테이블코인 활성화의 제도적 토대를 마련했고, 유럽연합(EU)은 가상자산법(MiCA)을 통해 암호자산 전반에 대한 규율 체계를 구축했다. 일본 역시 자금결제법을 중심으로 스테이블코인을 환업의 연장선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클의 글로벌 정책·운영 총괄인 단테 디스파르테 최고전략책임자는 “지니어스 법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명확한 법적 기준을 마련했다”며 “USDC는 세계에서 가장 깊은 유동성과 가장 높은 규제 신뢰도를 제공하기 때문에 선택받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간 국내 투자자가 만들어낸 유동성과 거래 수요가 해외 플랫폼 성장의 연료가 돼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도 지연이 가져온 비용은 이미 상당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가 제시한 이번 로드맵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논의가 더 이상 방향성 없는 논쟁에 머물지 않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발행 주체와 인가 구조, 준비자산 규율까지 큰 틀이 제시된 만큼 남은 과제는 입법 속도와 세부 조율이다. 1분기 내 규율 확정이라는 정부의 약속이 지켜질 수 있을지 시장의 시선이 쏠린다.
오늘경제 안채린 기자